입생로랑(Yves Saint Laurent)은 1961년 프랑스 파리에서 디자이너 이브 생로랑이 설립한 브랜드입니다. 그는 17세에 파리로 건너와 패션계에 입문했고, 크리스찬 디올 하우스에서 최연소 수석 디자이너로 발탁될 만큼 천재적인 재능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아름다운 옷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패션을 통해 사회와 문화에 메시지를 던지는 디자이너였습니다.
그의 디자인 철학은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이었고, 이는 곧 브랜드의 정체성이 되었습니다.
‘르 스모킹’ – 여성 해방의 상징
1966년, 입생로랑은 여성용 턱시도 수트인 ‘르 스모킹(Le Smoking)’을 발표했습니다. 당시 여성에게 바지는 여전히 금기시되던 시절이었지만, 그는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턱시도를 여성복으로 재해석했습니다. 이 디자인은 단순한 의상이 아니라,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자유를 상징하는 선언이었고, 패션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이 대담한 시도는 입생로랑을 ‘섹시함’과 ‘권력’을 동시에 표현하는 브랜드로 각인시켰습니다.
예술과 패션의 파격적인 결합
입생로랑은 예술을 패션에 적극적으로 도입한 디자이너로도 유명합니다. 1965년 발표한 ‘몬드리안 컬렉션’은 네덜란드 화가 몬드리안의 추상화를 그대로 옷에 옮겨놓은 듯한 디자인으로, 예술과 패션의 경계를 허물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단순히 시각적인 아름다움뿐 아니라, 브랜드에 지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더했습니다. 예술적 감각과 대중성을 동시에 잡은 그의 전략은 YSL을 차별화된 명품으로 자리매김하게 했습니다.
금기를 깨는 도발적인 광고
입생로랑은 광고에서도 파격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1971년, 그는 자신이 직접 누드로 등장한 향수 ‘포르 옴므(Pour Homme)’ 광고를 선보였습니다. 이 광고는 당시로서는 매우 도발적이었고, 브랜드를 ‘관습을 깨는 대담함’의 아이콘으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YSL의 광고 캠페인은 종종 성적 매력을 전면에 내세워, ‘섹시함’과 ‘럭셔리’를 결합한 독보적인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
로고와 브랜드 아이덴티티
YSL의 로고는 알파벳 Y, S, L을 세로로 교차시킨 형태로,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줍니다. 이 로고는 시대와 트렌드가 변해도 변치 않는 세련미를 유지하며, 브랜드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2012년에는 ‘이브 생로랑’에서 ‘생로랑 파리(Saint Laurent Paris)’로 브랜드명을 변경하며, 보다 현대적이고 미니멀한 이미지를 강화했습니다.
[브랜드 스토리 6] 'Saint Laurent(생 로랑)' 관념을 깨는 용기② < World Pick < Global Topic < 기사본문 - 월드투데이
[브랜드 스토리 6] 'Saint Laurent(생 로랑)' 관념을 깨는 용기② - 월드투데이
[월드투데이 이하경 기자] 디올의 해고 통보는 생 로랑의 정신적 상태를 더 악화시켰고, 그는 발드그라스 군병원으로 이송되어 다량의 진정제와 정신작용제를 투여받게 된다. 이 사건 이후로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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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YSL의 섹시함
오늘날 YSL은 하이패션과 스트리트 감성을 결합한 디자인, 대담한 컷과 실루엣, 그리고 강렬한 블랙 컬러 사용으로 ‘섹시한 명품’이라는 이미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디 슬리먼(Hedi Slimane)과 안토니 바카렐로(Anthony Vaccarello) 같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은 브랜드의 도발적 DNA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젊고 세련된 감각을 더했습니다.
입생로랑이 섹시한 명품 브랜드가 된 이유는 단순히 옷의 디자인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회적 금기에 도전한 용기, 예술과 패션의 경계를 허문 창의성, 광고와 마케팅에서의 대담함이 결합된 결과입니다.
이브 생로랑이 남긴 유산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YSL을 단순한 패션 브랜드가 아닌 ‘태도와 철학을 입는 명품’으로 만들었습니다.